아래 글은 2023년 9월 21일,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이후 쓴 넋두리입니다.
그 일이 1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바뀐 지금의 입장에서 잠시 떠올려봅니다.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기어코 가결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을 보니 180석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결국 종말에 다다를 것을 예측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도 그럴 것 같다. 대표를 감옥에 기어코 넣었다는 당원들이 당에서 버틸 수 있을까. 어쨌거나 지금의 정황은 이재명이란 사람이 현직 대통령의 유력한 정적이기 때문에 핍박당하는 것으로, 이재명이 순교자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니까. 여러 이야기가 나오던 와중이지만 조금 뒤 트위터, 아니 X를 꺼버렸다. 굳이 오래 보면서 감정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었다. 가슴이 철렁하더니 오후 내내 우울감이 가시지 않았는데, 운동 끝나고 같이 운동하시는 분들과 시원한 바람 맞으며 얘기하다 집 오니까 좀 괜찮아졌다. 그래 이 나이스한 날씨가 있는데 정치 쯤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언론인을 메인 잡으로 삼지 않기로 한 나에게 나날이 1승 추가...를 외치게 된다. 뉴스를 강박적으로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새는 뉴스를 강박적으로 피해다닌다. 그런 지 좀 됐는데, 작년 쯤부터였나. 결정적 계기 중 하나는 이태원 참사 때 트위터에서 뉴스를 접하던 즈음 이틀 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던 거였다. 식당 가도 YTN 트는 게 싫고 TV 트는 식당도 안 가려고 한다. 가족들이 정치 뉴스 이야기 한두 마디씩 하는 게 두렵기도 하다. 그 순간 순간 가슴이 너무 자주 철렁이니까. 시간 지나면 조금은 괜찮아지지만 괜찮아지기 전까지가 너무 힘드니까. 뉴스나 세상사에 신경 쓸 새 자체를 없애고 싶어서 일에 더 집중하기도 한다.
어느 새 이렇게 돼버린 이유가 뭘까. 아마도 나와 내 주변인들이 싫어하는 정당이 여당이고, 싫어하는 인물이 대통령이며, 그 인물들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일같이 헛짓거리를 하며 뉴스에 얼굴을 내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이를 먹다 보니 내 주변에서 현 여당, 소위 말하는 보수 정당을 좋아하는 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이유는 많다. 가족들 중에도 좋아하는 이가 없으며, 나이 먹어서는 여대를 다니고 예술 업계에 발을 담구다 보니 보수 정당을 좋아하는 이를 보기 어려운 환경에 있었구나 싶다. 어쩌면 내 성향대로 환경을 고른 것일수도 있겠지만 말이지.
지금 상황에서 뉴스를 보기도 싫다는 짜증을 느끼는 이들이 정권이 바뀌면 행보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정치에 격렬히 관심을 갖는 이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열아홉, 스물, 전 대통령 시절이 그랬으니까. 뭐 나라고 안 그럴 것 같지도 않다. 민주당을 아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쪽 정당이 집권을 하여 지금 벌어지는 헛짓거리나 지금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기분은 짜릿하겠지. 음.... 정치적 선택을 이끄는 건 다 이런 감정 반응이겠구나 싶다. 그치. 그러니까 정치가 감정싸움이 되는 거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전 정권 때 태극기 집회에 나오시던 분들은 지금 내가 현 정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전 정권에 대해 품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그 분들이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이기보다는 ‘틀린 생각' 혹은 ‘지금 시대에 권장하기 어려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옆나라 일본에도 공산당이 있는데 우리나라라고 그러지 말라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으며, 떠나갈 일이 아무리 봐도 없어 보이는 주한미군이 절대 떠나가지 않도록 우리가 굳이 ‘운동'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집회에 태극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 십자가는 진심으로 사절이다. 그렇지만 그 분들은 공산당 까이꺼 생겨도 된다던가 게이 커플도 결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던가 하는 내 의견을 보고 분명 ‘틀렸다'고 하시겠지.
그래서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면, 이 ‘어디까지가 다르고 어디까지가 틀린가'를 결정하기 위해 하는 게 이 ‘이념 투쟁'이라는 정치투쟁의 끝판 과정이겠구나 싶다. 틀리다고 자리잡은 관념을 그저 다른 것일 뿐이라고 만들기 위해, 혹은 다르다고 자리잡은 관념을 틀릴 뿐이라고 만들기 위해 다방면에서 투쟁 혹은 공작이 벌어진다. 이 이념 투쟁이라는 게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힘싸움이나 사건사고, 혹은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소중하게 여겼던, ‘옳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기어코 이뤄냈다 생각했던 일이나 관념들을 전부 엎어버리는 게 정권교체의 현실이기 때문에 뉴스가 좌절감만 있는 피하고 싶은 것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알겠다. 음.... 생각의 파도가 넘실댈 때면 이 사회에서 살기 싫고 외국이나 자연으로 도피하고 싶어진다. 끝난 것 같은 이념 싸움을 다시 해야 한다던가, 그렇게 해서 주변 사람들이 화내고 절망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봐야 한다던가, 그렇게 50~60대가 되어서도 롤백을 반복하는 세상에서 원한 쌓으며 늙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던가..... 하여간 환국 정국 같은 세상에서 역시 답은 자연도피일까.
브레히트였나, 골수 빨갱이 극작가였던 이 사람은 오락적 목적으로 몰입을 불러일으키는 대중예술 작품들이 사람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든다며 극혐했다. 그 프랑크푸르트 학파였나 싶은 뭐 아도르노였나 벤야민이었나 뭐 그런 세대의 사람들 치고 이 브레히트(?)랑 비슷한 의견 안 가져본 사람이 없어 보였다. 왜 그랬을지 알긴 알겠다. 그렇지만 지금 나 같은, 삶의 현장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그 대중예술의 몰입은 다음날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다 울었지? 그럼 다시 일상을 살자, 하는 그런 작품들. 대중예술 말고도 그런 기능을 하는 행위나 매개체들이 많이 필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운동이 이 효과가 가장 크다. 허벅지 쭉쭉 늘리며 땀 내고 웃으며 집에 오니 정당 정치 따위 될 대로 돼라 싶어지는데, 이런 일들이 사람을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기능을 아마 하긴 하겠지만, 내 감정이 많이 상한다고 세상이 많이 바뀌는 것도 아닌 걸 생각하면 운동을 통해 일상의 밀도를 높이고 감정을 전환하는 게 차라리 삶의 효용을 높인다.
음. 그런 식으로 지내야만 하는 시기다. 지금은. 원래도 없던 여유를, 불안을 느낄 새 없는 루틴을 세우느라 더 없애버렸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피로감에 사무칠 때나 불안의 지겨움을 실감할 때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말이 계속 쌓인다. 쌓이다 못해 오늘 터져버린 것 같다. 이걸 안전한 감정 내에서 터뜨릴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한 나 칭찬해.
그래. 세상은 어떻게든 되겠지. 삶을 좀 더 튼튼히 쌓는 게 답인 시기다,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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