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인터넷을 좋아하는 20대 여자로 살며, 주변을 둘러보면 장혜영 의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꽤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는 지난 국회에서 각종 소수자 의제를 상징하는 개인으로 4년을 보냈다. 21대 국회 임기를 마무리하고 선거를 치른 소회를 한 인터뷰(링크: https://lovehateclub.com/janghyeyoung/)에서 밝혔는데, 참 너무나도 많은 곳이 눈에 밟히는 인터뷰였다.
우선 미리 밝혀 둔다. 인터뷰 상당히 재미있었다. 정치인 장혜영이 진보 의제를 세련된 언어로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나 역시 내 살아 생전에 장혜영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방식에 있어 장혜영이나 그가 속한 정의당의 행보에 많이 동의하지는 못했고, 그래서 이들에게 표를 주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장혜영이 원하는 세상이 내 살아 생전에 오는 건 내 바램이기도 하다. 이걸 이 글을 읽으며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의제와 과정 사이
제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정치는 3점 슛을 넣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탈시설지원법이 3점 슛이었죠. 국회의원을 오랫동안 준비한 정치인이 아니잖아요. 많은 상황과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국회의원이 됐죠. 삶에서 마주한 장애인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법과 제도를 발견했고, 그래서 정치를 한 번 해보기로 했어요. 정치 전체를 바라보는 식견이나 큰 흐름 속에서 역할을 찾기보다는 제가 알고 있는 영역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들어왔어요.지금은 한 세트, 시즌을 이기지 않으면 3점 슛을 넣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껴요. 세트의 룰을 이해했다면, 진작 권력 그 자체에 도전하고 투쟁하는 일을 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커요.(21대 국회 활동은) 제가 바라보는 정치적인 세계가 의제에서 정치 그 자체로 확장되는 시간이었어요. 지금의 정치 환경에선 논리와 근거와 진정성이 의제를 관철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는 걸 느꼈어요. 어떻게 하면 정치 세력으로서 시민들에게 인정받을지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해야죠.
삶 속에서 발견한 문제를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3점 슛으로 비유된다면, “한 세트, 시즌을 이기지 않으면 3점 슛을 넣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치 현장에서 의제를 밀어붙여 원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지난한 권력투쟁을 견뎌야 한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논리와 근거와 진정성이 의제를 관철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라는 말이 유독 상징적으로 느껴진 건, 21대 총선 때 처음으로 국회의원을 뽑아본 뒤 4년 동안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서였다. 나는 장혜영 의원이 당선되었던 21대 총선 때만 해도 그가 속한 당 의원 개개인의 정체성, 구호 및 지향에 매력을 느끼는 편이었다. 그리고 4년이 흐르며, 그 당이 그 구호 속 비전대로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의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이 되었다.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같은 진보 의제를 두고 지지자가 민주당과 정의당으로 갈라지는 걸 보면, 의제의 선명함과 정체성 대변의 측면에서는 정의당 의원들이, 지난한 권력투쟁을 견뎌내는 능력으로는 정의당보다 민주당의 진보 지향 의원들이 훨씬 크게 신뢰받는 편이다. 유권자들에게 그런 신뢰를 준 정치인의 한 예시로 진선미 의원을 알아보자. 그는 호주제 위헌 소송에 변호사로 참여하는 등 사회운동 이력을 기반으로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고, 2014년에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였으며, 군 내 동성애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러한 행보를 기반으로 그는 20대 총선이 치러진 2016년 보수 기독교 단체 동성애문제대책위원회가 지정한 동성애 옹호 조장 5적에 선정되었고, 현재까지도 기독교계의 지속적인 비방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서울 강동구 갑 지역구에서 20대, 21대, 22대에 걸쳐 연이어 당선되었고,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진선미 의원은 지역구 중진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다양한 타협을 했다. 2016년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며 그는 당시까지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과 혼인신고를 했고, 자신을 ‘강동댁’으로 부르며 친근한 중년 여성 정치인으로 지역에 이름을 알렸으며, 지역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명성교회에 신자로 등록하여 출석하기 시작했다.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2013년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폭로하는 등 본인이 속한 진영의 생존을 위한 권력투쟁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지역구 의원이 된 이후로도 그는 주민번호 뒷자리에서 성별 표기를 삭제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내놓거나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하고, 심지어 여성가족부 장관 청문회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 된다거나 에이즈 전파가 동성애 때문만은 아니라고 발언하는 등, 비례 시절에 비하면 덜 두드러질 뿐 이전과 비슷한 지향을 계속 유지하면서 선수를 늘려가고 있다.
장혜영이 이러한 타협에 나설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지역사회의 정치, 경제와 촘촘히 이어진 종교와 복지 사업체의 구조를 지적하며, 이 구조를 깨야 시설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기에 “시설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른 사회를 조직해 내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 라는 말을 남겼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타협을 하지 않고 싶어서 정의당에 남는다는 이야기일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아래 대목을 읽었다.
(정의당에 남기로 결정하셨죠. 분명 큰 정당에서 제안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많이 있었죠. 사람마다 선택이 다를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기득권은 현재의 세계가 유지됨으로 인해서 힘을 얻어요. 제가 원하는 변화가 이 세계가 유지되어서는 이뤄질 수 없다면 균열을 강화하는 쪽에 힘을 더하는 게 맞죠.예를 들면 장애인 시설 유지의 큰 이해관계자는 종교와 복지 사업체들이에요. 한국전쟁 이후 돌봄의 수요를 가정과 국가가 감당할 수가 없었을 때 종교를 필두로 한 복지법인들이 생겨났어요. 이들을 국가가 지원했고, 이제는 그 카르텔이 시설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큰 힘이거든요. 지역사회의 정치와 경제와 연결되어서 촘촘한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시설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른 사회를 조직해 내는 길 말고는 다른 방법을 모르겠어요.(그렇다면 현실의 한계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역설적으로 지금 기득권 정치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봐요. 교회나 사회복지 법인만큼 조직된 다른 정치적 공동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거잖아요. 양당의 구조에 균열을 내려면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를 만드는 과제를 결국 수행해야 하는 거죠. 정의당이 달성하지 못한 과제기도 해요.
명성교회에 다니는 동성애 5적 진선미 의원이 드라마틱한 사례일 뿐, 민주당에는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국회의원이 적지 않게 있다. 지역구에서 교회에 출석하거나 지역 개발 이슈를 내세우면서 선수를 늘린 뒤, 국회에서 진보 의제를 내세우는 이는 생각보다 많다. 다른 종류의 정치적 공동체가 교회나 사회복지 법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조직되기를 꿈꾸는 장혜영 의원이 지역구 교회에 다니며 차별금지법 발의에 참여하는 민주당 의원들보다 이상주의자라는 것은 분명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장혜영의 이상이 이뤄지길 바라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나는 장혜영이 원외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4년 동안 이 인터뷰에서 말한 것과 같은 방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장혜영 의원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이런 불신을 심어준 건 21대 국회의 정의당 정치인들이다.
견뎌내는 정치인 되기
22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보를 보며, 나는 국회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정치인이 자신의 지향을 꾸준히 유지하기는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류호정, 조성주, 배복주가 ‘세 번째 권력'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이준석의 개혁신당과 한 길을 가려고 하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결국은 지금 쓰러져가는 배인 정의당을 나와 좀더 기세가 좋은 개혁신당에 합류하여 의원 선수를 늘리려는 게 목적 아니었을까 싶다. 정의당이 당원, 자금, 당직자가 부족하고 지지층이 붕괴되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걸 일반 유권자인 나도 알 정도면, 정치인 본인들은 더 잘 알았을 것이다.
나는 이들의 행보를 보며 윗세대의 김문수, 하태경 같은 정치인이 어떤 이유로 보수정당에 갔을 지를 약간 알 것 같았다. 소련 해체의 충격이 당대 좌파 운동권 인사들에게 사회주의에 대한 관점, 그러니까 정치적 지향을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였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정당운동의 일환으로 민중당에서 1992년 국회의원 출마까지 했던 김문수가 그 이후 보수정당에 들어가 직업정치인 커리어를 착실히 쌓은 것을 보면, 그들이 보수정당에 간 이유 중에는 정치인으로서 어떤 ‘출세'를 해보려는 심리가 없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김문수처럼 운동에 오랜 기간 투신하여 신념에 대한 진정성을 오랜 기간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도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운동에 대한 진정성 면에서 과거의 김문수를 따라갈 수 없는 정의당 현역 정치인들이 정치적 지향이나 소속 진영이 바뀐다고 너무 놀랄 건 아닌 것 같다. 비록 이준석과 손잡는 류호정의 모습을 보며 극우 정치인 김문수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분노가 어땠을지 떠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2030은 공동체라는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죠. 정당과 시민사회 차원에서 관련해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나서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어요. 좋은 정당과 강한 정당이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강한 정당을 만든 다음 좋은 정당이 되자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렵더라도 좋은 정당을 만든 다음 강해지는 경로를 구상하고 있거든요. 좋은 정당은 공동체 구성원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조직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당원을 동원하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당원의 안부를 묻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어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소홀했고요.
저도 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살면서 처음으로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꼈어요. 취약함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도움을 주고받을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만든다는 것이고, 저는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사람이거든요.선거에서 발견한 지역의 문제를 지역민의 필요와 결합해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형성해 나갈 수도 있고요. 지역의 이해관계를 거울처럼 대변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치에 비추어서 보는 노력이 필요해요. 즐겁게 느껴지는 일입니다.
지역사회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작업에 매진하고 싶다는 장혜영의 비전이 지켜지기를 바라지만, 원외정당 정의당의 전 국회의원이 될 장혜영이 지역에서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과연 오래 지킬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기반 확보에 실패한 진보 인사가 반대쪽으로 흘러간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그렇다. 게다가 교회 이상의 공동체를 꿈꾼다는, 종교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인 입장을 보이는 정치인이 과연 그의 이상을 온전히 펼치며 원내에 진입할 수 있을까. 원내에 진입하지 못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가 과연 지금의 정치적 지향점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가 괜히 '세 번째 권력' 참여를 고민한 게 아니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진보 담론을 위한 선결조건
정치인이 자신의 뜻을 펼치려면 선거 당선이나 임명을 통해 공직자나 당직자라는 지위를 얻어야 하고, 이 지위를 얻어낼 수 있는 지지층과 득표력이 곧 그의 기반이 된다. 이 기반이라는 말은 정당이나 진영 단위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진보 담론이 사회적으로 펼쳐질 수 있는 기반은 비 보수정당에서 대통령이 나와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만 다음 세대의 진보 담론이 어떤 주제로 펼쳐질지를 큰 규모로 예측하며 실험할 수 있고, 유권자들도 진보 정치세력에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다.
21세기 들어 보수정당의 대통령 배출은 진보 담론 형성을 방해하고 모든 진보 담론을 ‘대 권력기관 투쟁' 앞에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은 노조를 사회악으로 취급하며, 대안 공간을 창출하려는 시민단체나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지원금을 대폭 삭감하고, 공영방송 경영진에 보수 인사를 내리꽂아 구성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탄압한다. 검찰이나 국정원 등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야당 지도자의 정치생명을 빼앗으려 노력하는 것은 화룡점정이다. 현실에 펼쳐지는 상황이 20세기적이니 진보 지지자들의 관심사도 자연히 20세기식 ‘대 권력기관 투쟁' 앞으로 모여들게 된다.
내가 이 명제를 가장 많이 몸으로 체감한 게 문재인 정부 시기였다. 촛불 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된 ‘다음 세대의 진보 담론'이 바로 페미니즘과 소수자 의제, 환경 문제 등이었고, 대통령 선거에서 심상정 후보가 6.17%를 득표하는 등 이들 의제를 상징하는 원내 정당으로 정의당이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인기가 절정에 달한 2018년은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구호로 내세운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1.67%를 득표하여 양대 정당과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 바로 다음 순위를 기록했고, 역대 최대 규모의 페미니스트 시위였던 혜화역 시위가 열렸다. 약간 추측해보자면,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정의당 김종민 후보를 이긴 사건이 2020년 21대 총선 때 정의당에서 류호정, 장혜영 의원을 비례대표 1, 2번으로 배치하는 데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신지예 후보는 선거 전날 내가 다니던 숙명여대 앞에서 유세를 펼쳤다. 선거운동 기간 우리 학교 앞에 무려 두 차례나 찾아와 유세를 펼친 신지예 후보는 교내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당시 에브리타임에서 신지예 후보를 안심하고 찍으라는 여론은 대강 이런 식이었다. “어차피 시장은 박원순이 당선되니까, 우리는 우리 의제와 정체성을 대변하는 신지예 후보를 뽑아 사회에 메시지를 주자.”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신지예 후보에게 투표하여 우리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자는 메시지가 통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시장은 박원순이 당선되니까" 라는 선결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수 정당 후보에게 잘못 투표했다가 박원순이 아닌 김문수나 안철수가 당선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유권자들이 안심해야 신지예에게 투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는 것이 여기서 정말 중요한 선결조건이다.
윤석열이 당선된 2022년 대통령 선거는 다른 방향으로 이 ‘선결조건'의 필요성을 입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홍준표 후보를 17.05% 차이로 꺾고 당선된 2017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6.17%를 득표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후보를 0.73% 차이로 꺾은 2022년 대선에서 심상정 후보는 2017년보다 훨씬 적은 2.37%를 득표했다. 선거 직전 윤석열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파란을 일으킨 가운데, 정의당 지지를 고민하던 유권자 상당수가 이재명에게 투표했는데도 불구하고 완주를 택한 심상정은 선거 이후 윤석열 당선 공신으로 몰려 크게 비난받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탑승 시위를 매일같이 무력 진압하는 정권과 정당의 행태가 정계에서 없어지는 것이 그가 원하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선결조건이라는 데엔 장혜영도 동의하고 있을 거라 믿는다. 탈시설지원법을 21대 국회 내에서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의제를 이야기하는 주체 자체가 정치적 탄압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한탄을 하고 인터뷰에서 이준석을 비판한 걸 보면 그렇다. 허나 21대 국회에서 정의당과 장혜영이 자신들의 주장을 넓히기 위한 선결조건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나는 좀 의문스럽다. 제1야당 대표가 검찰에 의해 구속당하는 세상이 장애인에게 좋은 세상일까? 정적을 잡아 가두는 정권 상당수가 장애인도 잡아 가두었다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왜 이재명 체포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쪽으로 당론이 결정됐는지, 장혜영 의원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다.
우당 혹은 정적
(확실히 진보정당은 교조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죠. 그게 정의당이 고전한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고요. 정의당의 실패에 대한 의원님의 진단은 무엇인가요?)
정치적 비전에 대한 당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요. 어떻게 권력을 얻을지를 두고 노선이 갈리죠.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으니 어쨌든 민주당하고 연합할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독자적 진보정당으로 양당 체제를 견제할지요. 치열한 토론을 통해서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그 토론을 하는 순간 당이 깨진다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끝까지 그 얘기를 하지 못한 채로 총선을 치렀어요. 재창당을 천명한 시점에서 노선 토론을 해야 했다고 생각해요.조국혁신당이 주장하는 민주당 견인이 정의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이 있죠. 그래서 정의당에 표를 줬지만 정의당이 그 역할을 할 생각이 없다고 느끼신 것도 사실이에요.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과 병립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어요.
이 대목을 읽으며 장혜영 의원이 당의 난맥상을 외면하지는 않고 있다는 걸 느꼈다. 정의당에게 최소 5석 이상의 비례표를 안겨준 지지자들이 ‘현실적 이유로 지역구에서 민주당을 뽑는 정의당 지지자'인지, ‘이상을 꿈꾸며 비례에서 정의당을 뽑는 민주당 지지자'인지를 따지는 것은 본디 민주당 지지자와 정의당 지지자 간의 오래된 논란거리였다. 혹자는 이번 총선의 결과를 이 논쟁에서 후자의 비중이 전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았음을 입증한다고 보는데,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 견인' 노선이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을 마냥 이겼다고 보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이 원외 정당이 된 건 그저 21대 국회의 정의당이 범진보 유권자들에게 사회 진보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는 당으로 낙인찍혀 심판의 대상이 된 결과라고 본다.
21대 국회의 정의당은 독자적 진보정당 노선을 밟는다며 민주당과 차별화된 길을 걸으려 노력했고, 그 결과 범진보 유권자들에게 청산 대상으로 지목되었으며, 22대 총선을 통해 원외 정당이 되었다. 창원 성산이나 고양 갑 등 기존에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던 지역구가 민주당에게 넘어가며 지역조직이나 노조 등의 지지기반이 붕괴된 것이 드러나 원내 복귀도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외 정당이 되어버린 정의당의 현황을 보면 과연 그간의 ‘민주당과의 관계설정'에 있어 정의당의 행보가 과연 당과 정파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이 맞았는지 한번쯤 생각해보게 된다. 이들이 민주당을 대하는 자세가 파국적 결과를 낸 건 단순히 지금 보수정당이 여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을 낳고 대통령이 수족처럼 부리는 권력기관이 야당 대표의 모든 것을 수사하여 없는 죄도 만들 기세로 노력하는 시국이라서 그렇다. 이미 범진보 유권자 상당수가 검찰과 이재명 대표의 관계를 20세기 군부와 양김의 관계와 비슷하게 읽는 이 상황에서,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보여준 것과 같은 민주당 비판은 유권자들에게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대통령 편들기로 읽힌다. 그 와중에 “6411번 버스에서 내리자"는 구호가 등장하는 등의 탈노동 우클릭 시도나 몇몇 국회의원들이 개혁신당행을 타진한 사건은 범진보 유권자들에게 정의당이 사실 기득권 우파 정당 아니냐는 의심을 샀고, 총선 결과는 앞서 말한 대로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서 비례위성정당이 코미디에 가까운 꼼수라는 건 민주당 지지자들도 다 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병립형으로 돌아가자는 여론에도 그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회의감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허나 애초에 20대 국회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입법은, 인터뷰 속 장혜영 의원의 발언처럼 “시민을 닮은 국회” 구성에 대한 이상을 민주당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모두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2대 총선에서 연동형을 유지하고 더불어민주연합을 설립하며 이재명 대표가 ”멋있게 이기는 길“이란 말을 남긴 것도 다당제 추구가 명분 싸움에서 이기는 방향이라는 공감대를 기반으로 했다.
이처럼 다당제의 공감대를 가진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꿈꾸는 것은 노동,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환경운동의 결과물이 국회를 통해 펼쳐지는 것, 즉 진보정당운동의 이상과 맥을 같이한다. 2004년 민주노동당 대변인이었던 박용진 의원과, 역시 민주노동당 당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하는 등 각종 진보 의제를 입법화하던 박주민 의원이 민주당에서 각각 재선, 3선 의원이 된 것으로 보아 현 시점 민주당 지지자들이 진보정당운동 및 그 아젠다를 거부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심지어 부정경선이나 이석기로 기억되는 현 진보당이 김건희 특검 찬성과 체포동의안 반대 당론, 강성희 의원 입틀막 사건 등을 거치며 끝내 더불어민주연합 참여까지 성사될 만큼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호감을 얻은 것을 보면, ‘이석기'나 ‘반미' 등 과거 통합진보당의 오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정의당이 대 권력기관 투쟁 국면에서 자세를 조금만 달리했다면 적어도 원외는 면했을 것으로 보인다.
나는 21대 국회 임기 동안 장혜영 의원이 정의당에서 어떤 방향으로 의사 결정을 참여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수많은 의사 결정이 맞물린 결과 장혜영과 정의당의 지지 기반과 권력은 축소되었다. 그는 여전히 의미 있고 아름다운 이상을 가지고 있으나 그 주변 여건은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득하다. 글을 쓰고 인터넷을 좋아하는 20대 여자이자 그의 이상이 생전에 이뤄지길 바라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앞으로 4년간 그가 자신의 이상을 버리지 않고 이 인터뷰 속 말들을 행동으로 해나가길 바란다. 그렇게 하여 정의당이 보다 신뢰받는 정당으로서 원내에 다시 진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너무 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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