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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독후감

mygrape 2024. 6. 30. 22:36

유시민 작가의 신간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발매 직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팔려나가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저자가 유시민이고, 띠지가 “윤석열은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로 시작하는데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을까. 예약 판매를 할 때만 해도 ‘그'의 최후가 험악하기를 기원하는 수많은 이들의 바램 속에서 이 책의 판매량이 여론 좌표처럼 읽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용이 좋아서, 유시민이 좋아서 책을 살 사람도 있을테니 그리 투명한 여론 좌표는 아니겠구나 싶었지만.

 

 

언론이 버리고 언론의 주목을 잃을수록 정치인이 반짝이는 아이러니

책의 내용은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시민이 이해하는 윤석열은 악인보다는 멍청이에 가까워, 정치적 설법보다는 침팬지 등 동물 행동 연구를 통해 그를 돌이켜 보는 것이 좋다. 이 멍청이를 맹종하는 집권 보수 정당은 무능과 무기력에 빠져 22대 총선에서 대패했다. 그런 멍청이를 대통령으로 올리는 데에는 아무튼 민주당 집권만은 안된다는 언론권력이 큰 힘을 썼다. 책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 권력을 휘두른 결과 사회에 끼친 악영향을 나열하고, 그런 윤석열을 빠르게 끌어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 윤석열의 정적인 이재명, 조국, 민주당을 분석하며, 그를 끌어내리는 유력한 방법으로 ‘눌리 프로시콰이'를 제안한다. 그리고 현 시점 민주당의 최대 지지층인 4050 세대를 위한 간곡한 응원을 끝으로 책은 마무리된다.

 

책의 내용 중 멍청이 윤석열이 저지른 실정을 비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덧붙일 말이 없다. 이미 이 책을 살 정도의 사람이라면 윤석열을 좋아할 확률이 만무하므로, 우리 모두가 어렴풋이 다 알고 있는 그의 비판점을 유시민의 필력으로 자세히 되짚어본다고 생각하면 좋다. 내게 이 책에서 확대 해석을 해볼 여지가 큰 부분은 언론 비판이었다. 기성언론이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윤석열 같은 사례가 몇 번이고 더 발생할 수 있을 거라서 그렇다.

 

책은 한국의 언론매체를 기성 보수언론사, 공영방송, 진보언론(저자는 이들을 ‘기자들의 언론'으로 부른다), 뉴미디어로 분류한 뒤, 뉴미디어가 기성 언론 지형에 저항하는 모습을 이번 총선을 근거 삼아 다룬다. 그의 서술은 민주당 코어 지지자들이 공유하는 언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과거 기술과 자본의 한계로 인해 기성언론이 마이크를 독점하던 시대에 저항하던 정치인 노무현의 죽음에 언론이 크게 기여하는 등, 현시점 주류 언론지형은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유일한 정치세력인 민주당을 공격한다는 점을 짚는다. 그리고 이들이 민주당 패배 사주를 위해 여론조사의 통계적 소음을 확대 해석하고, 민주당 내 비주류 및 진보진영의 내부 비판자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만 그 정파성과 무능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버림받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기울어진 언론지형에 대항하는 시도로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뉴스타파>, <서울의소리> 등의 뉴미디어의 총선 기간 활약을 이야기하며, 시민들이 기성 언론이 주목하는 민주당 정치인을 공천에서 탈락시키고 유튜브 기반 뉴미디어 매체의 뒷배가 되어 윤석열의 권력기반을 흔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기울어진 언론지형 속에서도 민주당과 이재명이 선거에서 선전하는 모습을 정치 기적이라 부르며.

 

책은 한국의 기성 언론을 정보유통회사 혹은 보수 세력의 선전기관으로 부른다. 보수 언론은 지금도 그를 선동가라고 부르는 데다, 그와 보수 언론의 관계가 여기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험악하다는 걸 알면 그 보수 언론을 적대시하는 정서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반면 한겨레, 경향 등을 대하는 관점에서는 한때 이들에게 기대를 걸었던 사람으로서의 애증, 저널리즘 규범에 대한 비판적 독해가 읽힌다. “나는 언론 엘리트의 자기만족에 보탬이 되는 신문이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신문을 보고 싶다.” (p101) 라는 말로, 지면 내에서 저널리즘 규범을 지키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려는 진보언론의 접근법이 정작 언론지형이나 정치권력의 변화를 전혀 일으키지 못하는 자기충족적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짚는다. 특히 이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언론은, 시민 모금으로 시작했기에 시민과 호흡하는 언론이 되기를 가장 많이 기대받았던 한겨레이다. 

 

그의 언론비평은 민주당 코어 지지자 및 당원들의 인식과 70% 가량 일치한다. 기성언론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큰 틀은 유지하되, 지지자들이 유시민에 비해 진보언론을 더 크고 입체적으로 미워한다는 점은 다르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이 보수언론의 적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지지자들을 규합하여 당을 성장시킨 것이 곧 민주당의 역사인 이상, 민주당 지지자가 기성언론을 정치계에서 없어져야 할 적폐로 취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 민주당 지지자들은 기성언론 친화적인 정치인들을 정치계에서 없어져야 할 적폐로 취급하고, 이들에 대한 적극적 낙선 및 낙천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총선에서 지지자들의 첫 번째 타겟은 ‘수박'으로 일컬어지는 민주당 당내 보수적 성향의 비주류 정치인이었다. 책에도 언급한 ‘조금박해' 등 당내 비주류들의 낙천 및 낙선도 유력한 사례이지만, 지지자들에게 더 큰 ‘불신버튼'은 이낙연과 박병석이다. 심지어 이낙연의 경우 보수언론이 이재명을 아직까지 도덕성으로 공격하는 땔감인 대장동 의혹을 직접 발굴하여 부각시키고 급기야 경선 불복까지 했으니, 당에 끼친 해악은 ‘조금박해'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이 보수언론의 ‘협치' 키워드에 맞춰 행동하며 뽑아준 이들의 기대치를 저버리는 과정을 본 지지자들은, 두 사람이 보수언론 기자 출신으로 보수언론을 준거집단 및 판단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런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결국 두 정치인은 이번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당에서 밀려났고, 지지자들은 자당 정치인들이 보수 진영과 ‘협치'를 거론하거나, 신중론을 내세우는 행위를 해당행위와 동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지자들의 두 번째 타겟은 정의당이었다. 한때 유시민이 속해 있던 그 당이 맞다. 유시민은 그래도 좌파 운동권 출신으로서 옛정이 남은 덕인지 진보언론을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엘리트 집단으로 읽는데, 민주당 지지자들은 진보언론을 조중동이 되지 못해 열등감에 차 있는 패권추구 집단으로 여긴다. 정의당이 민주당과 반목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 데에 한겨레, 경향 등 진보언론의 영향이 없었을 거라고는 보기 어렵다.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경향신문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을 보면 그렇다. 그렇게 진보언론의 프레임 내에서 행동하던 정의당이 이재명 체포동의안 찬성 당론 등의 행보를 보이자 유시민이 정의당원이던 시절만 해도 비례로 정의당을 찍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을 증오하게 되었고, 그 결과 이들은 원외 정당으로 전락했다. 

 

지지자들의 마지막 타겟은 민주당 청년정치인이다. 이들이 ‘탈이념'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오직 민주당의 이념만을 거부한다는 점을 짚은 대목을 읽으면서, 그간 ‘탈이념'을 절대선처럼 여기던 관념을 정면 반박하는 언어를 찾았다는 점에서 무척 시원했다. 이재명, 김남국 등 자당 정치인들의 흠을 기성언론의 논리로 크게 부풀려 비난하며 기성언론의 주목을 추구한 청년정치인들의 행보가 쌓인 결과, 이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당 청년정치인들을 경멸하기에 이르렀다. 현 시점에서 청년조직 활동을 통해 중앙정계에 뿌리내린 민주당 정치인은 전용기 외에 찾기 어렵다. 책에도 언급된 민주당 서대문갑 청년오디션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당내 청년정치인의 대표주자였던 권지웅을 심판하려는 목적으로 대흥행했으며, 해당 경선 결과 공천되어 당선된 김동아는 이재명 변호인단 출신으로 나이만 청년일 뿐 당내 청년조직 활동은 전무했다.

 

좀더 부연하자면, 민주당 청년 지지자들의 언론 불신에는 언론이 밀던 ‘청년 정치' 담론이 이준석을 띄워주는 것 이외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걸 본 탓도 있다. 우선 언론이 말하는 ‘청년'은 실제로는 ‘청년 남성'만을 의미했다 보니 청년 여성 대다수의 반감을 샀다. 그리고 ‘청년정치’나 ‘이대남'에 대한 보도가 GS25 집게손가락 논쟁 등 에펨코리아 등 남초 커뮤니티의 전방위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다 보니, 이런 집단폭력 행위에 질려버린 청년들이 성별을 가리지 않고 그에 대항할 수권능력이 있는 유일한 정치집단인 민주당 깃발 앞에 모이게 됐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몇몇 정치인들이 게임 등 ‘이대남' 이슈에 관심을 갖기는 했으나, 이미 커뮤니티가 보수 우위로 기울어진 판이다 보니 유권자들의 이목을 끄는 면에서 그 어느 민주당 정치인도 이준석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이준석을 경멸하는 남녀 청년들이 민주당 깃발 앞에 모이게 되었고, 기존 청년정치 담론이 주목한 젠더와 연령이 아니라 노동, 고용, 소득, 환경 등 다른 전선으로 유권자를 묶어내야 민주당이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눈치챘겠지만 이 승리 방법론은 바로 그 ‘언론의 적' 이재명의 것이다. 

 

결국 청년정치 담론을 청년이 거부하면서, 기성언론은 청년에게마저 버림받은 것이다.

 

사이다 없는 퇴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시민이 눌리 프로시콰이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나는 김대중이 전두환을 용서한 일을 떠올렸다. 유시민은 이명박의 노무현 사법살인이 촉발한 에너지가 박근혜 탄핵집회를 키워 이명박을 구속시키고, 이명박/박근혜 구속에 따른 보수의 반발심리가 윤석열 당선을 이끌었다고 보았다. 그의 분석은 틀린 것이 없으며, 그는 이 서사의 주요 당사자로서 윤석열에 대해 면책을 보장시켜 사임시키자는 주장을 감히 꺼낼 수 있는 자격도 된다. 애초에 이명박, 박근혜의 사법처리 과정이 윤석열을 정치계 스타로 만들었으니, 사법적 수단으로 윤석열을 처단하는 것이 윤석열같은 유사 사례를 만들기 좋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하나 더 물어보고 싶다. 민주당 지지자 중 김대중의 과오로 전두환을 용서하고 사면한 것을 꼽는 이들이 종종 있다. 이들은 전두환이 사형당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었어야 이후에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처럼 국가권력을 사유화하려는 권위주의적 정치인이 더 나오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한다. 전두환에게 괴롭힘당한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한 김대중이 민중 모두를 대변하여 전두환을 용서할 자격이 있었던 것처럼 군 것은 만용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보았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전두환이 말년에 회고록을 내며 5.18 관련 음모론을 유포하는 극우 세력의 숙주처럼 활동한 것을 보면 전두환에게 천수 누릴 자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전두환 사후 제작되고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끈 것을 보면, 김대중과 별개로 한국 민중은 전두환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처단이 아니라 퇴진을 통해 윤석열을 끌어내려야 우리 정치가 반동과 싸우는 수고를 덜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유시민의 주장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다. 살며 처음으로 뽑아본 대선후보가 이재명이었던 나는, 윤석열을 통해서 정치인이 ‘청춘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윤석열은 할로윈 전야 이태원에서 백수십 명의 청년이 목숨을 잃는 것을 방조하고는 그것이 좌파의 수작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2014년 4월 16일을 온 국민이 기억하듯, 2022년 10월 30일도 마찬가지의 날이 되어버렸다. 그 일이 있고 며칠간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뛰고 밥을 넘기지 못했던, ‘공황'이 온 걸 선명히 기억한다. 그는 채 해병을 수색 과정에서 죽게 만든 임성근 사단장이 무슨 잘못이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정도로 인간적 소양이 모자란 사람이 대통령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허망하기도 하다.

 

솔직히 지금 민주당을 지지하는 심리의 기저에는 각자의 청춘과 일상을 앗아간 윤석열이 처단당하는 모습을 보며 감정적 보상을 얻으려는 열망도 있다. ‘사이다 정치인'이란 말의 원조였던 이재명이 결국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의 계보를 잇는 위치까지 올라가고, 그런 처단의 정서가 친숙한 4050 세대가 조국혁신당을 그렇게 열을 올려 찍어준 것을 보면 그렇다. 윤석열을 그저 끌어내리기만 해도 민주당을 지지해준 그 열망에 부응할 수 있을까? 이건 나도 답을 못하겠다.

 

 

인간적인 정치비평

유시민은 21세기 한국 정치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참여정부 출범 공신이자 전직 대통령 두 명의 측근으로, 현재까지 한국에서 정치비평 컨텐츠에 출연한 모든 인물 중 가장 권력 정점에 가까웠던 인물이다. 그는 약 10년간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며 수 차례의 선거와 창당, 합당, 분당, 입각을 경험하고 은퇴했다. 한편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살 생존자다. 그가 지지하고 옹립한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아끼는 동료였던 노회찬 의원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에서의 그의 표정은 현시대 민주당 4050 지지자들을 이만큼 결집시킨 계기다. 

 

그의 경험과 위치는 책의 비평을 유독 세밀하고 탁월하게 만든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문제점을 꼬집고 비판하는 것은 물론, 수 차례의 선거와 창당, 합당, 분당을 경험한 이력을 내세워 정당정치의 양상과 정당 내부구조에 대한 세세한 비평을 내놓는다. 종이신문의 논설위원부터 유튜브 컨텐츠 패널까지 다양한 경로로 정치 비평을 해온 동시에, 진보 진영 소속으로 권력 정점 근처에 도달하여 다수 언론의 ‘타겟'이 되었던 경험을 살려 유독 매서운 언론비평을 내뱉는다. 그리고 보수 진영과의 권력투쟁 및 진보 진영 내부에서의 온갖 난맥상을 전부 겪고도 아직 진보 진영에서 힘을 내는 본인의 위치를 반영하여 지지자로서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장기적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책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챕터는 노무현, 노회찬, 조국을 다룬 “완벽하지 않은 선" 챕터였다. ‘의도하지 않았던 오류에 대해 죽음으로 책임진 사람'이라는 어느 시민의 표현을 인용하여 ‘완벽한 선'을 진보 정치인에게 강요하는 행태가 사람을 떠나가게 하는 비극을 일으키고, 그랬던 양태 중 하나가 조국 사태와 윤석열 당선이라는 걸 짚는다. 이 챕터를 읽으며 저자 유시민이 21세기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살 생존자였음을 새삼 떠올렸다. 개인의 비극이 곧 진보 진영의 역사가 되어버린 사람으로서 그가 자신의 삶을 제정신으로 온전히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개인사로만 읽을 수 없는 개인사를 모두를 위해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이처럼 진보 정치인에 대한 인간적 존중은 책에 휴머니즘적 색채를 부여했다. 인물론을 다루는 ‘이재명, 아직 죽이지 못한 자'와 ‘조국, 죽였는데 살아난 자' 챕터는 그런 온기 어린 접근 덕분에 재미가 더해졌다. ‘수모를 견디는 힘'을 갖고 끝없이 생존투쟁을 해내는 이에 대한 리스펙트, 권력에 의해 온 가족이 파괴되었지만 공적 가치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이에 대한 응원으로 이루어진 두 챕터는 두 인물이 윤석열 정권에 맞서 투쟁하는 구도를 명확히 설정한다. 인물론을 읽으며 재미를 느끼다 보면, 두 사람이 야당 정치인으로서 큰 지지세를 모으고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두 사람이 인간적 매력과 충실한 서사를 가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윤석열을 보면서 마음에 새긴다. 서로에 대한 불신과 불관용이 악의 지배를 연장한다는 것을. 부족한 그대로, 서로 다른 그대로 친구가 되어 불완전한 벗을 관대하게 대하면서 나아가야 악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p44) 이 문장이 이 책에서 유독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관용 없는 진보가 오랫동안 진보로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보수진영 인사 중 원래는 진보진영 소속이었으나, 진보진영 내부에서 서로 앙금이 남는 싸움을 벌이다가 보수로 전향해버린 사람이 꽤 많다. 2019년 <조국흑서> 멤버들의 면면을 떠올리며 이런 당부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는 걸 생각한다.

 

이러한 삶의 궤적을 갖고 매체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하는 정치 분야 오피니언 리더는 다시 나오기 어렵다. 심지어 그런 사람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언변과 문장력으로도 이름을 날려 베스트셀러를 찍어낼 확률은... 아마 0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까지 진보 진영의 중요 자산으로 유권자와 독자들의 리스펙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